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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리

세계지리 - 감비아Gambia의 역사와 경제, 정치, 국민, 자연환경에 대해 알아보자

by 꽈순이 202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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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리 - 감비아Gambia의 역사와 경제, 정치, 국민, 자연환경 

아프리카 서부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 공식 이름은 감비아공화국입니다. 동서로 좁고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동서 길이가 290km 정도 됩니다.  감비아강 양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토의 남북 길이는 25km에서 50km이고, 지형이 평탄하다, 대서양 연안과 감비아강 연안에는 맹그로브와 관목 숲이 줄지어 있으며 나머지 지역은 모래흙으로 덮여 있습니다.  짧은 해안선을 제외하고는 세네갈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습니다. 약 4만 4000명이 사는 번화한 항구도시인 반줄이 이 나라의 수도이자 하나뿐인 도시입니다.

 

감비아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비옥한 땅이 적고, 값진 광물도 매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강 어귀 근처에서는 열대 작물이 잘 자랍니다. 그러나 감비아 농민들은 대개 떵콩 재배로 생계를 꾸리며, 이 나라 소득의 상당 부분이 땅콩 재배에서 나옵니다. 

 

감비아강에 있는 제임스섬은 한때 노예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1660년대부터 1965년에 독립할 때까지 영국이 오늘날의 감비아땅을 전부 또는 일부 통치했습니다. 

 

 

세계지리 - 감비아의 정치

감비아는 공화국이며 영국연방 국가입니다. 대통령과 내각이 감비아를 다스립니다. 대통령은 5년 임기로 국민이 선출하며, 대통령이 의회의원들 중에서 각료를 선임합니다. 의회에서 법률을 제정합니다. 의회의원 중 국민이 45명을 선출하고, 대통령이 4명을 임명합니다. 의회의원의 암기는 5년입니다. 18세 이상의 국민에게 선거원이 있습니다. 김비아의 최고 법원은 대법입니다. 

 

세계지리 - 감비아의 국민

감비아 국민은 거의 모두 아프리카 흑인입니다. 주요 종족은 인구가 많은 순으로 만딩고족, 풀라니족, 월로프족, 세라훌리족, 졸라족입니다. 국민은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습니다. 

 

만딩고족은 약 27만 5000명으로 전국에 흩어져 삽니다. 이들은 상업과 땅콩 재배로 생계를 꾸려갑니다. 인구가 10만 명인 풀라니족은 대부분 감비아 동부지방에 살며 목축으로 생계를 잇습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가축을 이끌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입니다. 

약 9만명에 이르는 월로프족은 대부분 감비아 북부 국경 근처에서 농사를 짓거나 수도인 반줄에서 사는데, 이들은 반줄 인구와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세라훌리족은 약 6만명으로 대부분 감비아 동부지장에 삽니다. 이 지역은 토양이 척박해서 농사짓기가 어렵습니다. 인구가 5만 5000면인 졸라족은 감비아감 남쪽의 해안 근처에 삽니다. 이들은 다른 종족보다 오랜 기간 감비아에서 살았고, 한때는 만딩고족과 적대관계에 있었습니다. 졸라족은 흙벽으로 둘러싼 작은 마을에 살며 농사를 짓는 부지런한 농민들입니다. 쌀과 수수를 식용으로 재배합니다. 

 

반줄 시내와 근교에 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 나닙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1/3정도만 학교에 다닙니다. 많은 학생이 6년 과정의 초등교육을 마치지만, 중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줄에 기술학교가 있고 윤둠에 사범대학이 있습니다. 

 

세계지리 - 감비아의 자연 환경

기니에서 발원한 감비아강은 감비아 땅을 가로질러 대서양으로 들어갑니다. 작은 선박은 대서양에서 쿤타우르까지 이 강을 따라 거슬러올라갈 수 있습니다. 

 

대서양 연안에서 감비아 중심부까지 강기슭에는 맹그로브 나무가 우거진 늪지대가 펼쳐져 있습니다. 늪지대 뒤로 건기에는 땅이 단단하게 굳지만 우기에는 물에 잠기는 지역인 '반토파로스'가 있습니다. 해안 근처에서는 밀물 때 감비아강으로 밀고 올라오는 짠 바닷물이 반토파로스로 범람해 토양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우기 때 민물이 범람하는 내륙지역은 벼를 재배하는 논으로 이용합니다. 

 

반토파로스 너머에는 모래투성이인 고원이 강 양안에서 세네갈까지 뼏어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땅콩과 벼를 재배합니다. 감비아의 기후는 여름철인 6월에서 10월까지는 무덥고 다습합니다. 내륙지방은  기온이 43℃까지 올라가기도 합니다다. 겨울철인 11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는 기온이 16℃정도까지 떨어집니다. 

 

겨울철에는 건조한 바람인 '하르마탄'이 사하라사막에서 불어옵니다. 해안 근처에서나 해마다 1,000mm 정도의 비가 내립니다. 내륙지방은 강수량이 훨씬 적습니다. 

 

세계지리 - 감비아의 경제

땅콩이 전체 수출액의 약 95%를 차지합니다. 벼도 재배하는데 벼농사는 대부분 여자들이 짓습니다. 감비아의 유일한 산업은 땅콩가공업이며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은 영국입니다. 감비아강이 아 나라의 주요 교통로입니다. 철도는 없지만 강 양쪽에 도로고 있으며, 세네갈 북부와 남부를 연결하는 감비아횡당도로가 있습니다. 반줄 근처의 윤둠에 국제공항이 있어서 감비아와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이나 영국을 연결해줍니다. 국영방송인 라디오감비아는 영어와 아프리카어로 방송을 합니다. 

 

세계지리 - 감비아의 역사

지검의 감비아지역은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는 강력한 말리왕국의 일부였습니다. 15세기에 포르투갈이 감비아 해안에 교역기지를 세웠고, 16세기에 이곳은 영국와 포르투갈의 노예 무역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661년에 영국은 감비아강에 있는 제임스섬에 정착촌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100년 동안 영국과 영국과 프랑스는 이 강의 교역권을 차지하려고 싸웠습니다. 

 

1765년에 영국인들은 오늘날의 감비아와 세네갈의 일부를 포함한 세네감비아라는 식민지를 세웠습니다. 1783년에 영국은 세네갈 영토를 프랑스에 넘겨주었습니다. 1816년에 영국 상인들이 오늘날의 반줄인 배서스트를 세웠으며, 1888년에는 감비아식민지를 세웠습니다. 1902년에 이르러 오늘날의 감비아지역 전체를 연국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1945년에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감비아는 차츰 자치권을 갖기 시작해, 1963년에는 내정에 대해 완전한 자치권을 갖게 되었다. 인민진보당 당수인 자와라가 초대 총리가 되었습니다. 감비아는 1965년 2월 18일에 완전히 독립했고, 1970년 4월 24일에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자와라는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자와라는 1972년과 1977년에도 다시 선출되었습니다. 1982년에 채택한 헌법 개정안에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도록 규정했습니다. 

 

1982년 선거에서 감비아 국민들은 자와라를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선출했습니다. 1982년이 감비아와 세네갈은 연방을 두 나라는 밀접한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고 군대를 통합했습니다. 그러나 감비아와 세네갈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여, 1989년 연방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1994년, 자메가 이끄는 감비아 육군 장교 집단이 자와라 정부를 전복시키고 군사평의회를 설치하여 감비아를 통치하였습니다. 1996년 8월에 새 헌법을 채택하였고, 그 다음 해에 자메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선거가 끝나자 자메는 바로 군사평의회를 해산하였고, 1997년에  총선거를 실시하였습니다. 자메는 2001녕에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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