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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리 - 교토의 역사와 경제, 교육과 문화, 경제, 주민에 대해 알아보자

by 꽈순이 2023.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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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리 - 교토의 역사와 경제, 교육과 문화, 경제, 주민에 대해 알아보자

일본 혼슈섬 중서부에 있는 대도시, 문화와 관광의 도시입니다. 산업 중심지인 오사카에서 내륙으로 45km쯤 들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794년부터 1868년까지 일본의 수도였기 때문에 '천년고도'라고 부르며 도시 곳곳에 문화재가 많습니다. 

교토의 개관

교토는 교토분지(야마시로분지)의 북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삼면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사의 북서쪽에는 아타고산, 북동쪽에는 유명한 엔랴쿠사가 있는 히에이산이 있습니다. 히에이산의 동쪽에는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와호가 있어 교토의 용수와 발전에 사용됩니다.

시의 서쪽에는 가쓰라가와강이, 북동쪽에는 가모강이, 남쪽에는 우지강이 흐르는데, 이 강들은 사의 남서쪽에서 합류하여 요도가와강을 이룬 후 오사카만으로 흘러들어간다. 
 

교토의 주민

교토는 일본에서 6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입니다. 대부분의 주민이 일본인이지만, 한국인과 중국인을 비롯한 회국인들도 상당한 수에 이릅니다. 주민은 대부분 시의 중심부에 모여 살고 있지만 점차 교외로 확산되어가는 추세입니다.

주민들은 대부분 일본 전통 종교인 신도나 불교를 믿습니다. 크리스트교를 믿는 사람은 얼마 안됩니다. 거의 모든 주민이 일본어를 사용하며, 이 곳 한국인과 중국인들은 한국어와 중국어를 쓰기도 합니다. 
 

교토의 경제

관광도시답게 호텔, 여관 같은 숙박업과 상업이 발달했습니다. 특히 이 곳은 일본 최대의 견직물 도매업 중심지입니다. 특히 이 곳은 일본 최대의 견직물 도매업 중심지입니다. 제조업은 대체로 소규모 공장에서 가내공업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전통 공업의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니시진직이라는 견직물 직조와 유젠염이라는 염색업이 대표적인 전통 공업이며, 이 밖에도 주요 전통 특산품으로 도자기, 칠기, 칠보 세공품이 있습니다. 또한 금속업, 제재업, 섬유업, 식품업, 인쇄출판업, 전기기계업 같은 신흥 산업도 발달했습니다. 그러나 전통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제2차세계대전 이후 새로 지은 공장들은 대부분 역사 문화 유적이 적은 근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교토의 교육과 문화

교토는 종교 중심지로서, 귀중한 예술품을 보유하고 있는 사찰이 1600여 개, 신사가 400여 개나 됩니다. 빼어난 건출물로 손꼽히는 킨가쿠사는 1394년 처음 세워졌으며 1950년대에 다시 지었습니다. 또 다른 주요 건출물로는 니조성을 들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주요 건출물로는 니조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곳은 에도시대에 쇼균(군사 통치자)이 임명한 다이모(영주)들이 살던 곳입니다. 이 성은 794년에 세웠고 1855년에 개축했습니다. 옛 왕궁인 교토고쇼는 헤이안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지금도 일본 왕가의 주요 의식을 여기서 행합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인 미나미자극장(1603년 설립)에서 공연하는 가부키는 매우 유명합니다. 교토에서 열리는 주요 마츠라(일본의 전통 축제로 주로 풍어와 풍작을 기원함)로는 산주산겐도에서 매년 1월 15일에 열이는 도시야마츠리와 야사카신사에서 행해지는 기온마츠리가 있습니다. 섣달 그믐날 밤의 오케라 풍습 또한 유명한 전통 행사입니다. 

이 도시에는 국립대학교인 교토대학교와 크리스트교 계통의 도시샤대학교인 교토대학교와 크리스트교 계통의 도시샤대학교를 비롯하여 많은 고등교육기관이 있습니다. 고쿄국립박물관, 나라국립박물관과 함께 일본의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교토국립박물관에는 보물 1만여 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불상, 도자기, 서적, 염직물, 회화 따위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교토의 역사

794년에 간무 천황이 중국 당나라의 장안성을 모방하여 이 곳에 도읍을 건설하고 '헤이안쿄'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평화와 인전의 도읍'이라는 뜻입니다. 그 후 일본인들은 이 도시를 '교토'라고 불렀습니다. 

교토란 원래 도읍지를 뜻하는 일반 명사였으나 헤이안시대 말기에 이르러서 이 곳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정착했습니다. 가마쿠라시대에는 정권의 중심이 토코쿠지역으로 옮겼기 때문에 정치도시로서의 기능이 줄어들고 대신 점차 경제도시로 발전했다. 무로마치시대에 이르러 다시 정치도시로의 중요성을 되찾았으며 경제 중심지로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 후 1467년부터 10여 년 동안 계속된 전쟁으로 다시가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이후 시가지를 정비하여 인구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에도시대 말기에는 인구가 60만에 이르렀으며, 전통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했습니다. 메이지유신이 일어난 1868년에 도쿄가 교토를 대신하여 수도가 되었습니다. 

정치 기능을 상실한 이후, 전국에 불어닥친 근대화 열품의 영향으로 교토에는 서구 과학기술을 응용한 산업화가 추진되었으며 근대식 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교토는 제2차세계대전 때 일본의 주요 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폭격을 받지 않은 곳이다. 따라서 유적과 유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일본의 역사와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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