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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리 - 뉴올리언스의 개관, 주민, 예술, 경제,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by 꽈순이 2023.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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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리 - 뉴올리언스의 개관, 주민, 예술, 경제,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미국 남부 루이지애니나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세계적인 항구도시입니다. 미국 남부의 상업, 문화, 공업 중심지입니다. 미시시피강 기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시시피강은 뉴올리언스의 서쪽에서 흘러들어와 남동쪽 어귀까지 약 180km를 흘러 멕시코만으로 들어갑니다. 이와 같은 지리적 이점 때문에 미국 해운업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뉴올리언스는 미국에서 가장 흥미로운 도시로 손꼽힙니다.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뉴올리언스를 찾습니다. 해마다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마르디그라(프랑스어로 '참회의 화요일'이라는 뜻) 축제 때에는 화려한 퍼레이드와 즐거운 행사가 벌어집니다. 이를 보려고 많은 관광객이 몰려듭니다. 
 
이 축제때에는 렉스크류라고 부르는 왕이 선두에서 수백대에 이르는 퍼레이드 마차를 인도합니다. 마치 위에 올라탄 밝은 옷을 입은 기수들은 구슬, 장난감, 가짜 금화를 던지면서 관중들을 열광시킵니다. 특히 유서 깊은 프렌치쿼터는 유럽 옛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옵니다. 
 
뉴올리언스는 20세기 초에 재즈음악을 탄생시킨 음악의 도시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일류 재즈음악회를 보려고 이 곳을 찾습니다. 뉴올리언즈에서는 지금도 오래 된 뉴올리언스풍의 재즈를 곳곳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곳은 프리저베이션홀이라는 소규모 연주회장입니다. 
 
뉴올리언스는 미국 남부에서 가장 오래 된 큰 도시입니다. 오늘날 뉴올리언스는 옛 건물과 새로운 건물이 잘 조화된 화려한 도시입니다. 유적지는 대부분 그대로 보존되었지만 도시재개발계획에 따라 낡은 건물은 초현대식 빌딩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다른 대도시들처럼 뉴올리언스도 범죄와 빈곤 같은 사회문제가 심각합니다. 
 

뉴올리언스의 개관

뉴올리언스를 '초승달 도시'라도도 부릅니다. 이것은 구시가지인 프렌치쿼터가 마시시피강의 만곡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뉴올리언스는 대부분 남쪽의 마시시피강과 북쪽의 폰처트레인호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뉴올리언스 일대는 대부분 고도가 해수면보다 낮기 때문에 자연 배수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홍수를 막으려고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배수펌프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약 209km에 이르는 제방이 있습니다. 
 
뉴올리언스 중심부에는 프렌치쿼터와 주요 상업지구가 포함됩니다. 프렌치쿼터라는 이름은 이 곳에 처음 정착한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들이 지은 것입니다. 이 곳은 또한 프랑스어로 '오래된 광장'이라는 뜻의 '뷰카레'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프렌치쿼터에 있는 건물은 대부분 프랑스풍이라기보다는 에스파냐풍입니다. 
 
1788년과 1794년에 큰 화재가 일어나 이 일대를 휩쓸었고, 당시 루이지애나를 다스리고 있던 에스파냐는 에스파나풍으로 프렌치쿼터를 재건했습니다. 잘 가꾼 아름다운 뒷뜰과 화려한 쇠창살 장식의 발코니를 자랑하는 건물에서 에스파냐풍의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뉴올리언스의 주민

흑인이 62% 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백인과 소수의 아시아계 민족입니다. 뉴올리언스에 사는 백인 가운데 상당수는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경제적 부와 종교적 자유를 찾아 이 도시에 온 유럽 이민의 후손입니다. 20세기 초에는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많은 사람이 뉴올리언스로 이민을 왔습니다. 
 
흑인들은 노예가 최초로 미국에 수입되던 18세기 초부터 이 도시에서 살아 왔습니다. 20세기 초에 흑인 약 31만 명은 이 도시의 최대 인종집단입니다. 대부분 가난하며 도시 중심 근교에 있는 흑인지역에서 삽니다. 이 밖에 독일, 멕시코, 베트남, 아일랜드, 이탈이아, 쿠바, 폴란드, 프랑스 등지에서 온 이민의 후예들이 삽니다.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시민은 상당수가 도심의 남동부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초창기에 뉴올이언스에 와서 정착한 프랑스인과 에스파냐인의 후예를 '크리올'이라고 합니다. 뉴올리언스에서는 아직도 크리올의 영향력이 강합니다. 프랑스식과 에스파냐식이 혼합된, 강한 향료를 많이 사용하는 크리올식 요리는 뉴올리언스 일대의 식당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뉴올리언스의 예술

뉴올리언스는 미국 남부의 문화 중심지입니다. 뉴올리언스는 20세기 초에 재즈음악을 탄생시킨 이래 재즈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프렌치쿼터의 베이슨, 램파트 등에 있는 술집과 나이트클럽에서 힉인과 백인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재즈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뉴올리언스의 경제

뉴올리언스의 경제는 해운과 관광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뉴올리언스항은 세계에서 하역량이 많은 항구로 손꼽힙니다. 프렌치쿼터의 인기 때문에 매년 700여 건에 이르는 각종 회합이 이 곳에서 열립니다. 또 이 도시는 미국 남부의 상업, 공업, 수송의 중심지입니다. 
 
뉴올리언스항은 1년에 1억 3200만 톤의 화물을 처리하며, 약 60개 나라에서 온 화물선 5,000여 척이 정박합니다. 주요 수출품은 미국 중서부지방에서 나는 곡물과 그 밖의 식품, 석유 제품입니다. 
 
뉴올리언스항에는 소형 화물 운반서도 많이 드나듭니다. 소형 화물 운반선은 미국의 2대 내륙 수로인 미시시피강과 멕시코만 연안수로를 이용하는데, 이들 수로는 뉴올리언스에서 서로 만납니다. 1년에 10억 달러 이상의 물품을 생산하며 이 지역 노동자의 12%가 일합니다. 
 
뉴올리언스에서 가장 큰 공업단지는 미슈드어셈블리퍼실리티인데, 이 곳에 입주한 회사는 대부분 항공산업 관련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미슈드공업단지는 1969년에 아폴로 11호를 달에 쏘아올린 세턴v 로켓을 제작했습니다. 뉴올리언스 대도시권의 다른 주요 산업으로는 식품공업, 석유화학공업, 석유 제품 제조업, 1차금속산업을 들 수 있습니다. 
 

뉴올리언스의 역사

유럽인이 뉴올리언스 일대에 정착하기 전에 이미 인디언이 이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1682년에 프랑스 탐험가인라 살레, 카발리에가 마시시피강유역 일대를 프랑스 영토라고 선포했습니다. 
 
이 도시는 1718년에 비앙빌, 무안이 건설했습니다. 비앙빌은 당시 프랑스령이던 루이지애나주 식민지의 총독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어린 루이 15세를 대신해서 프랑스를 통치했던 오를레앙(영어식 발음은 올리언스) 공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으 이름을 뉴올리언스라고 지었습니다. 
 
1722년에 비알빌은 뉴올리어스를 프랑스 식민지인 루이지애나(오늘날 미국 중부지방 1/3에 해당) 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 후 역사의 변천에 따라 이 도시의 하늘에는 프랑스, 에스파냐, 남부연합, 미합중국의 깃발이 차례로 펄럭였습니다.
 
1762년, 프랑스 왕 루이 15세는 루이지애나를 그의 사촌인 에스파냐 왕 카를로스 3세에게 주었습니다. 1800년에 프랑스는 비밀리에 루이지애나를 에스파냐로부터 되돌려 받았지만, 이사실을 1803년 3월까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달인 1803년 4월에 프랑스는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팔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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